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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에 ‘父親 박수근의 마음’을 담았죠”
이윤아트 (ip:) 평점 0점   작성일 2020-02-20 추천 추천하기 조회수 113

“달항아리에 ‘父親 박수근의 마음’을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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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남 화백이 500호짜리 대작 ‘계승-징검돌과 예배당이 보이는 풍경’(혼합재료, 488×173㎝, 2020) 앞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림 안 오른쪽에 지팡이를 짚고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이 아버지 박수근이고, 그 옆의 소년이 박 화백 본인이다.


■ 장남 박성남 화백 개인전

22일부터 사랑의 교회 갤러리서

동서양 화법 어우러진 조형세계

생성·소멸·외로움 등 관념 표현

오목해 보이는 음각한 달항아리

그 안에 모인 빛이 아버지의 마음


“달항아리는 아버지의 얼굴이에요. 창신동 단칸방 시절 문창호지를 바르며 가족을 보듬고 지켜주던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박수근(1914∼1965)의 장남 박성남(73) 화백이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작품 70여 점을 들고 오는 22일부터 4월 4일까지 ‘사랑의 교회’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박수근이 ‘빨래터’ 같은 작품에서 ‘화강암의 질감’으로 투박한 우리의 전통적 감성을 자극했다면 박 화백은 동서양의 화법이 어우러진 조형세계로 생성과 소멸, 현대인의 외로움 등 다양한 관념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음각으로 표현한 달항아리 작품인 ‘층_그리움’(혼합재료, 66×65.5㎝, 2020).


이번에 전시되는 박 화백의 작품은 크게 박수근처럼 일상의 풍경을 마티에르 기법으로 표현한 그림, 달항아리 부조 그리고 독실한 신심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마티에르 기법 작품의 경우, 박수근의 마티에르와는 또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계승, 징검돌과 예배당이 보이는 풍경’(혼합재료, 488×173㎝, 2020)은 언덕에서 아버지와 함께 산하를 내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500호짜리 대작으로 마티에르에 부조 기법까지 동원해 작품 속 인물들이 마치 말을 걸어올 것 같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캔버스 천 위에 유화 물감을 덧칠해 마티에르를 표현했어요. 저는 시멘트에 사용하는 아크릴 필러 등 공사 현장의 재료들로 마티에르를 표현했는데, 여러 재료를 쓰다 보니 마치 부조 작품 같은 효과도 만들어졌어요.” 그는 “유화 물감을 캔버스 천 위에 바르고 또 바르며 생긴 작품 속 마티에르는 일제 식민시대와 전쟁 등으로 고난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주는 과정의 결과물”이라면서 “평론가들은 마티에르에서 ‘화강암’ 질감만 얘기하지만 저는 이 기법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그 마음을 음각한 달항아리에도 담았다. “안으로 파였지만 빛이 들어오면 반사돼 오목해 보이잖아요. 그 빛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설명이다.

박수근이 작고한 1965년, 고3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생활한 박 화백은 누구보다도 박수근을 가까이 지켜봤다. 단칸방 제일 아래 자신이 자고, 그 옆에 동생인 성민이, 여동생 인애, 누나 인숙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부자리를 펴고 잤다고 했다.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아침이면 아버지가 직접 이불 개고, 요강을 부시는 사이 어머니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아침 식사를 차렸죠. 그처럼 자상하실 수 없었습니다.” 박 화백은 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로 ‘괜찮아’라는 말을 꼽았다. 어머니가 “누가 그림값을 주지 않고 그냥 그림을 가져갔다”고 할 때면 언제나 “괜찮아, 오죽하면 그랬겠어”가 다였다는 것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얼마 전 공개한 지난해 미술품 경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박수근 작품의 호당 가격은 약 2억 4000만 원. 국내 최고가다. 그 뒤를 김환기(약 3500만 원)와 이우환(약 1475만 원)이 잇고 있다. 그럼에도 유족에게는 작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창신동 시절 미국의 마거릿 밀러 부인과 그 지인들이 모두 구입해 갔고 얼마 남지 않은 작품들도 생활고 때문에 일부는 정리하고 나머지는 미술관 등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박 화백은 아버지처럼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국전에서 7차례 입상했다. 박수근이 18세 때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 ‘봄이 오다’로 입선했듯이 서울공고를 졸업한 박 화백은 1966년 열아홉에 제15회 국전에 120호 크기의 그림을 출품했다. 제목은 ‘추야의 표정’, 당시 그 그림은 국정교과서 미술책 표지로 채택됐다. 교과서에는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도 함께 실렸다. 박 화백은 한때 “아버지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다는 자긍심이 없으면 붓을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명성이 방해가 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국전 입선작을 포함해 작품 상당수를 불태웠다. 결국 그는 1986년 국내 활동을 접고 호주에 정착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접시를 닦고 청소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 뒤 21년이 지나서야 귀국해 다시 본격적으로 붓을 잡았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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